"Germs"라는 이름의 band가 있었다고 합니다. 70년대 Punk band였구요. 이 밴드의 싱어였던 Darby Crash는 75년, 불과 17세의 나이에, 영원 불멸의 명성을 얻을 "5개년 계획"을 구상합니다. (그것도 물론 David Bowie의 "5 Years"를 듣고 즉흥적으로 생각해 낸거죠) 먼저 밴드를 만든다, 추종자를 모은다 (단 한장의) 음반을 발표한다, 그리고 자살한다. 와우! 멋진걸? 뭐 이런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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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은 어찌 어찌 굴러 가긴 했습니다. 밴드를 결성했고, 곡들이 알려지기도 전에 티셔츠부터 만들어 뿌렸고, 나름 동네에서 인기는 끌었고, 79년에 발표한 단 한장의 앨범은 몇장 팔리지 않았지만 나중에 Red Hot Chili Peppers나 Jane's Addiction 등의 같은 LA 출신 밴드에게 영향을 주기는 했다는 군요. 그리고 이 친구는, 정말로 5년째 되는 해에 자신의 계획의 마지막 단계를 실행합니다. 평상 시에도 "나 이제 살 날 며칠 안 남았어 My days are numbered"란 말을 반 농담처럼 입에 달고 다니던 이 20대 초반의 젋은이는, 1980년 12월 7일, 스스로에게 헤로인 치사량을 주사하고 그대로 골로 가버립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거창했던 계획과는 달리, 바로 다음날 뉴욕에서 존 레논이 흉탄을 맞고 쓰러지는 바람에 완전히 사람들의 관심 밖에 묻혀버리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그리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을 겁니다.

한편...

B-급 영화계의 대부로 일컫어지는 로져 코만 밑에서 일하던 Rodger Grossman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이 사람은 1981년에 Penelope Spheeris라는 사람이 70년대 LA의 펑크 음악계를 소재로 찍은 "The Decline of Western Civilization"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Darby Crash와 Germs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93년부터, 이 얘기를 영화로 만드는 계획에 착수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작부터 온갖 암초가 이 계획을 방해했죠. 수소문 끝에 간신히 Germs의 옛 멤버들을 찾아내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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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화 계획에 동의를 받기는 했지만, 문제는 자금. 전형적인 B-급 영화 제작 방식대로, 이리저리 돌아 다니면서 개인들로부터 약간의 투자를 얻어 내긴 했지만, 어렵게 꼬셔서 50만 달러 짜리 수표를 써 주기로 했던 텍사스의 한 할머니가 갑자기 피부암으로 죽어 버리는 바람에 거의 물거품이 되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Grossman은 어떻게든 제작비를 벌어 보려고 휴대폰 게임 회사에서 사업 개발 일을 하기도 하고, TV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맨 일도 하고, 고교 동창회 비디오 촬영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TV 시리즈 ER의 Ray Bernett 박사 역으로 얼굴을 알리고 2002년작 멜로 영화인 "A Walk to Remember"에서 맨디 무어의 상대역을 맡기도 했던 Shane West가, Darby Crash 역을 맡고 싶다고 나섰습니다. 이미 David Arquette를 비롯한 애초의 cast들은 이 늘어지는 계획에 진저리를 내고 모두 그만둬 버린 상황이었죠. 인기 TV 드라마에서 의사역을 맡았고 영화에서 중요한 역이라고는 말랑 말랑한 멜로 캐릭터가 전부였던 이 배우가, 이런 골 때리는 펑크 록커 역에 어울리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Shane West는 사실 부모가 골수 펑크 팬이라 어려서부터 펑크 음악에 익숙해 있었고, 오디션에서도 자신이 직접 만든 펑크를 연주하며 광적인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특히 옛 Germs 멤버들이 마치 Darby Crash가 살아 돌아온 것 같다며 환영했고, 제작진의 만장일치로 주연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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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최소한 밴드 멤버 역을 맡을 배우들은 캐스팅이 되었습니다. 옛 Germs 멤버들은 이들의 코치 역을 자청해서, 최대한 오리지널 Germs의 음악과 무대에 가까운 밴드로 훈련을 시킵니다.

결국 역시나 또 제작비 문제인데요. 지칠 대로 지친 제작진은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서 "이왕 이렇게 된거,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는지나 보여주자구"라는 심정으로, 영화에 등장할 Germs("Baby Germs")와 오리지날 Germs의 합동 공연을 계획합니다. 이때가 2004년. Germs의 공연은 Darby Crash가 1980년 12월 3일 그러니까 자살하기 4일 전 마지막 콘서트에서 "다시는 우리 공연을 볼 수 없을 거에요 You won't see this again"라고 말한 뒤 24년 만이었습니다. 결과는 의외로 대성공! 관객들은 열광하고, 용기를 얻은 제작진은 제작비도 조달할 겸해서 몇 차례 더 콘서트를 가집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영화 제작 계획도 알려지기 시작하고, 새로운 투자자도 생겼습니다. 영화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고, 그 와중에도 Baby Germs는 Darby Crash가 아닌 Shane West를 리더로 계속 공연을 이어 나갑니다. 영화가 완성될 시점 쯤에는 이미 Darby Crash가 Germs에서 노래한 기간보다 Shane West가 "Baby Germs"에서 노래한 기간이 더 길었구요.

영화 내용 못지 않게 제작 과정 자체도 한편의 드라마인 이 영화가, 드디어 2008년 8월 8일에 개봉한다는 군요. 물론 미국에서 얘기고, 이 영화를 우리나라 극장에서 보게 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이네요. 사실 "That Thing You Do"도 톰 행크스가 조연으로나마 출연하지 않았더라면 수입이 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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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보우더나트 사원 사진 중에 빠뜨린게 몇 장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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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네와르 문양이 새겨진 문 앞에 노점상 청년이 기념품을 팔고 있습니다. 클릭해서 크게 보면, 그 정교한 아름다움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오른쪽: 보우더나트 근처에는 티벳 난민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고, 티벳 기념품을 팔고 있는 가게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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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우더나트를 나와, 카트만두에서도 가장 정통 힌두교 사원인 퍼슈퍼티나트 사원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퍼슈퍼티나트로 올라 가는 언덕 어귀의 마을은 비교적 깨끗한, 전형적인 카트만두 중상류층 주택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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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에는 3천만의 신이 있다고도 하고 3억의 신이 있다고도 하는데요. 그 중에서도 으뜸가는 신인 시바는 파괴의 신이기도 하고 그의 아내인 파르바티와 사실은 같은 몸으로 서로 변신 합체를 하기도 했다가 수호신 비슈누가 얼굴을 바꾼 것이기도 했다가 창조주인 브라흐마와 싸우는 듯 하지만 그놈이 그놈이라거나... 하여간 복잡합니다. 어쨌거나 확실한 건 기독교의 3위일체, 천지창조, 구세주 사상 기타 등등이 힌두교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죠. 힌두교는 역사도 엄청나게 오래된 데다가 신의 수만큼이나 많은 각종의 신화, 전설의 무궁무진한 보고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종교는 그 뿌리를 힌두교에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지요. 어느 종교나 핵심 교리를 보면, 힌두교에서는 이미 그 원형에 해당하는 신화를 수천년전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으니까요. 가히 종교 중의 종교라고 하겠습니다.

퍼슈퍼티나트는 네팔 최대의 힌두교 사원이면서 또한 인도 대륙 전체를 통털어 4대 시바 사원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힌두 교도가 아닌 사람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문 밖에서 멀찍이 바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사원 안쪽에 거대한 동물의 금동상이 있는게 보이시죠? 소 같기도 하고 돼지 같기도 한데 사실 사슴이라는군요. 시바가 금뿔 사슴으로 변신해 이 일대의 숲에 내려와 놀다 갔다고 하네요. 가랑이 사이를 자세히 보면, 시바의 남성성을 상징하는 거대한 물체가 매달려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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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원 근처에는, 걸인이라고 해야 하나 탁발수도승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이한 점은 다들 비교적 깨끗한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고, 특히 구걸 깡통이 아주 반짝 반짝 빛나네요.
오른쪽: 이곳에도 빗자루를 들고 열심히 쓸고 닦는 아주머니가 있습니다. 옷이 아주 이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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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가끔씩 눈에 띄는, 우리나라에서 온 것이 분명한 옷을 입고 계시는 아저씨들입니다. 노조복 같기도 하고... 왼쪽 아저씨 등에는 "무재해"라고 써 있고 오른쪽 아저씨 등에는 "한국 케이블 TV 북부 방송"이라고 써 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간 이주 노동자들이 가져온 것이겠지요. 네팔에는 특별한 산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서, 첫째가 관광 산업이고 둘째가 농업, 세째가 해외 파견 근로로 벌어 오는 외화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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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소와 사람과 비둘기가 아무렇게나 어슬렁거립니다. 관광객들은 신발을 신고 다니지만 힌두교도들인 네팔인들은 사원 입구 광장에서부터 모두 신을 벗고 맨발로 다니는데요. 길에 소똥이 디글거려도 별 신경들을 안 쓰시는 것 같더군요. 예쁜 치마를 입은 아주머니는 어깨에 맨 화려한 가방으로 보아 꽤 살만한 집안 마나님이실 것 같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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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네팔에서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원숭이입니다.
오른쪽: 개 한마리가 용케 쪽그늘을 찾아 팔자 좋게 잠을 청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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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옆에서는 아이들이 대나무를 엮어 만든 네팔식 그네를 타고 있습니다. 이건 평지에 있는 거지만...나중에 해발 3,000m에 달하는 안나푸르나 기슭에서, 까마득한 낭떠러지 바로 옆에서 저 그네를 타고 노는 아이들을 보게 되는데 정말 아찔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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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밑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젊은 승려입니다. 붉은 빛이 도는 벽돌과 주황색 승복의 색감이 아주 좋지요? 니콘 카메라의 특징 중 하나인 선명한 색감을 드러내기에 딱 좋은 피사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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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고 그리로 원숭이들이 들락날락 하더군요. 개구멍이 아니라 원숭이 구멍...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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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슈퍼티나트 사원 근처에는 이외에도 키라떼쉬르 사원, 비스뉴 사원, 락스미 사원 등 크고 작은 사원이 많이 있습니다. 모두 갠지스 강의 지류로서 네팔에서는 성스러운 강으로 여겨 지는 버그머띠 강변에 모여 있는데요. 역시 이방인의 눈길을 잡아 끄는 것은 화장터인 아르여가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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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정말로 시신을, 통나무 장작 위에 얹고, 지푸라기 거적 몇장만 덮은 채 그냥 태웁니다. 저런 연기가 사방에서 피어 올라 일대가 매캐한, 시체 타는 냄새로 그득합니다. 그리고 유족들은 주위에 둘러 앉아 얘기도 나누고, 도시락도 까먹고, 빨래(?)를 하기도 합니다. 아무도 울지는 않습니다. 이방인들로서는 문화적인 충격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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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을 여행한 또다른 어떤 여행자 분은 이때의 경험을 다소 과장된 문학적(?) 수사와 함께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가며 책에 적으셨던데요... 물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곳의 풍경은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 낯선 정신적 경험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걸 또 뭐 그렇게 오바스럽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해요.

두가지 사전 경험이 떠 오르는데, 하나는 예전에 시카고에서 들렀던 뮤지엄 오브 아트에서 마침 열리던 이집트 미이라 특별전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여유가 있었던 관계로 꼼꼼히 해설까지 자세히 읽어 가며 관람을 했었는데요. 그 전시의 기획자의 설명은, 현대인들이 고대 이집트인들의 미이라 의식을 지나치게 과장해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였어요. 물론 초기의 미이라들은 왕족들에게만 한정된 의식이었고, 고대 이집트 인들은 시신을 잘 보존해 놓으면 나중에 나일 강을 건너서 영혼이 돌아올 때 어쩌구... 하는 의미를 정말로 믿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이게 나중에는 왕족 뿐 아니라 귀족, 심지어는 평민들 중에서도 돈이 있는 사람이면 비슷한 장례 의식을 치렀다는 군요. 쿠푸 왕조였나, 하여간 미이라가 성행했던 시절의 막판에는 아마도 그게 무슨 대단히 특별한 의미를 갖기 보다는 오늘날 각 문화권에서 각기 독특하게 치러지는 장례 문화처럼, 그냥 집안의 세를 과시하기 위한 의례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고 해석하더군요.

이런 주장이 근거 있게 들렸던 이유가 (시간적으로는 훨씬 앞이지만) 두번째 경험인데요. 어렸을 적 잭 파란스가 해설하던 오리지날 "믿거나 말거나"에서 보았던 많은 에피소드 중 하나가, 우리 나라의 장례 의식을 다루는 거였습니다. 우리에겐 익숙한 장례 의식을, 잭 파란스 아저씨는 너무 진지하게 곧이 곧대로 해석을 하더군요.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하여간 각 의식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면서 마치 이 동양의 작은 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정말로 사람이 죽으면 극락 왕생 어쩌구... 하는 걸 믿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라는 식으로요.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져서 어 저건 좀 아닌데 했던 기억이거든요. 하긴 뭐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아마존 오지의 최후의 원시 부족도 평상시에는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껌 씹으며 다니다가 방송국 카메라 들어 오면 주섬 주섬 원시 복장을 챙겨 입는다던가요.

제가 약간 시니컬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네팔인들이, 힌두교도들이 우리보다 훨씬 종교적인 삶을 사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문화적 차이를 너무 호들갑스럽게 받아 들이는 것도 그들에 대한 존중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 여행자의 책을 읽으며 들긴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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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아마도 오늘 장례의 주인공(?)이었을, 먼저 보낸 할머니와의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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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매캐한 연기가 피어 오르는 가운데 여자아이가 원숭이들을 쳐다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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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주변에는 눈에 띄는 복장과 치장(?)을 한 분들이 많은데, 이런 분들일 수록 정식 승려가 아니라 관광객의 주머니를 노린 구걸꾼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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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여가트(화장터) 건너편에는 11개의 돌탑이 모셔진 에카더스 루드라 사원이 있습니다. 시바의 남성성기의 상징인 시바링거를 모셨다고 하는데 저게 왜 남성성을 나타내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날 묵었던 하야트 호텔의 인테리어가 저 모양을 본따 만든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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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을 태운 재와 유품과 꽃을 강물에 흘려 보내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하류쪽에서 뭔가를 열심히 건지고 있습니다. 설마 고기를 잡는 건 아닐테고, 아마도 떠내려 오는 유품 중에 뭔가 쓸만한 것이 있나 살펴 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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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 아주머니는 시체 떠 내려온 물에 아이를 목욕시키고 계시네요...-.- 괜찮을까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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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그마티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바차레숴리 사원입니다. 이곳 분들은 빨래를 그냥 길바닥에 널어서 말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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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널어놓은 걸 쳐다 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순식간에 원숭이 떼가 몰려 와서 조금 놀랐습니다. 원숭이들이 가끔씩 무리를 지어 관광객을 공격하기도 한다는 소리를 들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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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Day 0: Prologue
신혼여행 Day 1: 상해에서의 예기치 못한 1박
신혼여행 Day 2: 드디어 네팔 도착!!
신혼여행 Day 3-1: 카트만두, 보우더나트 - 믿음의 사람들
신혼여행 Day 3-2: 카트만두, 퍼슈퍼티나트 - 화장터에서
신혼여행 Day 3-3: 포커라 - 드디어 트레킹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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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mented by 유디트 at 2008/06/25 14:29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눈감으면 천연색으로 펼쳐지는 그곳의 풍광때문에 누군가가 너무 원망스럽습니다.(흑흑...)

  2. Commented by BlogIcon 쓴소리단소리 at 2008/07/18 18:50

    네팔, 티벳, 인도 한번은 가보고 싶은 나라들 입니다.

골목길

Culture Club 2008/06/04 21:47 posted by

한겨레 구본준 기자의 블로그에서 재미있는 포스팅을 읽었는데, 여기서 소개된 쉬용이라는 중국 사진작가의 원래 주요 테마가 중국의 오래된 골목길, 즉 "후통"이라고 한다.

야하고 웃겨서 더 슬픈 고발 사진들
http://blog.hani.co.kr/bonbon/10703

소개된 쉬용의 "후통" 사진들을 보다 보니 문득 5~6년 전에 찍었던 사진이 생각나, 지금은 방치해둔 옛날 싸이홈피를 뒤져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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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기에 7~80년대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지만 분명 21세기 서울의 한 귀퉁이를 찍은 사진이 맞다. 사진의 배경이 된 곳은 월곡동과 청량리동 사이, 대략 홍릉의 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국방과학연구원(KIDA) 사이에 위치해 있던 재개발 지구. 지금은 물론 싹 밀어 내고 삼성 래미안이 들어서 있다.

궂이 (이 사진을 찍은) 똑딱이 니콘 쿨픽스 탓을 할 필요도 없이, 쉬용의 작품을 보고 떠올랐다는 게 민망할 정도로 조잡한 사진이긴 하지만, 지금 봐도 당시의 감정 상태만큼은 잘 드러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아래에 내가 적어 두었던 글귀는 이랬다.

"엊그제는 날씨가 무척 우울했다. 전날 새벽까지 마신 술에다 기분도 우울해서...한번도 안 가본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가 밥을 사먹었다. 사진도 우울한 것만 나왔다."

이때 당시만해도 나름 날카로움을 유지하던 감수성은 지난 2년간의 행복한 결혼 생활로 완전히 무뎌져 버렸어요. 역시 예술(?)은 정서적, 육체적 배고픔에서 나오게 돼 있는 건가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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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mented by BlogIcon 구본준 at 2008/06/05 11:09

    멋진 사진 잘 봤습니다. 좋은 포스트 트랙백해주셔서 감사드려요.^^

  2. Commented by Sol at 2008/06/05 14:11

    아마 저랑 술드셨을꺼에요...?^^

  3. Commented by Sol at 2008/06/05 14:16

    그리고 비서실장으로 기억나지만. 이 사진은 형님의 니콘디지털 카메라. 비틀어서 구동 시켰던 카메라로 찍으셨었는데..ㅋ